사업을 하는 입장에서는 가족, 친구들이 모이면 대화 하기가 불편할 때가 많습니다. 일단 사업을 하는 사람보다는 회사에 다니거나 취업 준비를 하거나 직장 생활을 하지 않는 상황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말이 사업이지 1인 기업에 가까운 상황이라서 가족들에게 이해하기 쉽게 보여줄 것도 마땅치 않습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퇴사하고 세 번째 크리스마스/연말이고, 네 번째 새해인 거 같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너무 팍팍하고, 힘들고, 정신이 없어서 항상 저 혼자 이 날들을 보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들어서부터는 제가 일부러 연락을 해서 약속을 잡기도 하고, 명절과 같이 친척들이 모이는 자리에는 무조건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얼굴도 모르는 조카를 보고, 한 없이 어리기만 하던 친척 동생들도 만나고, 항상 저에게 용돈을 주시던 집안 어른들과 술도 마십니다. 아직 익숙하지 않고, 서툴지만 조카, 동생, 어른들께 명절/연말/연초를 핑계 삼아 항상 받기만 하던 용돈을 주거나 드리면서 소소한 뿌듯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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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할 때, 아니 정확히는 퇴사하기 한참 전부터 상상만 하던 사업하는 내 모습이 아주 약간은 자리가 잡았기 때문에 가능한 상황입니다. 그러면서 친척 어른들께는 당신의 조카가 뭐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나이 값은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드리며 저에 대한 걱정을 덜어 드리는 겁니다. 거기에 혼자 사업을 하면서 계속 힘들고, 긴장되어 있고, 피곤한 몸과 마음을 잠시마나 잊고, 평온한 상태로, 방전된 건전지 충전하듯이 나를 충전하는 겁니다. 어른들을 찾아뵙고, 동생들과 술을 마시고, 조카들을 꼭 안아주고, 그러면서 오히려 제가 힐링을 받습니다. 어른들의 얼굴에는 내가 알고 있던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모습이 겹쳐 보이고, 동생들은 내가 한 손으로 안고 다니던 그때의 동생들이 아니고, 조카들은 시간이 좀만 더 흐르면 나와는 놀아주지도 않을 거고... 신기하기도 하고, 슬퍼지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하지만 결국에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봐왔던 편한 사람들이고, 1년에 며칠 안 되는 그 시간 동안은 내용증명서도, 이자도, 풀리지 않는 문제도, 대출금도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1년 중에 이틀 연속 노트북을 만지지 않는 유일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평소에는 밥 값, 차비, 옷, 생필품을 살 때마다 항상 최소한으로 지출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사업을 하면서 지출하는 모든 비용이 내가 직접 관여해서 번 돈이기 때문에 더욱 더 그런 거 같습니다. 정확히는 해야 되는 소비도 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만 원이든, 천 원이든 그 돈을 벌기 위해 겪은 갈등과 할애한 시간과 고민 등을 생각하면 차마 그 돈을 쉽게 사용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런데 친척들과 모일 때가 되면 그 봉인이 해제가 되어 버립니다. 지금보다 더 어설픈 어른이었을 때 어떻게든 어른 흉내를 내보겠다고 했다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사업한다고 퇴사하고, 나이만 먹은 퇴물처럼 보였던 적이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지금 제 사업의 상태는 그때보다는 훨씬 좋아졌습니다. 바닥났었던 통장도 어느새 조금씩 잔고가 쌓이고 있습니다. 이제 50, 60을 바라보시는 친척 어른들께서 저를 걱정하시는 게 너무 민망하고 죄송스러웠습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많이 부족한 어른이기 때문에 그걸 감추고 싶어서라도 어른들께, 그리고 동생들에게는 절대 돈을 아끼지 않습니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그만한 돈을 그것도 현금으로 사용했었던 적이 제 인생에서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그 어떤 지출보다도 의미 있고, 많은 것을 얻고, 나 자신에게 자극도 됩니다. 그만큼의 돈을 벌기 위해서는 또 많은 시간을 남들과 티격태격해야 되겠지만 수집하려고 돈을 버는 건 아니니까요. 그리고 헤어지면서 어른들께, 또 동생들에게, 그리고 남이었지만 이제는 가족으로 엮인 사람들에게 문자나 전화라도 한 통 받으면 사업하면서 계약 하나 했을 때보다 더 큰 만족감과 기쁨, 충만함을 느낍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 왔습니다. 며칠 방치해 두었던 일들을 생각하니 다시 머리가 아파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떤 건 방치해 두었더니 알아서 해결된 것들도 있습니다. 어제 모든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가기 전에 친구 한 명을 만났습니다. 그 친구도 저와 같이 사업을 하고 있고, 미혼이고, 벌써 10년 가까이 알고 지낸 사이입니다. 둘 다 연말/연초에 한가 해지는 사람들이라서 사업을 시작하기 전부터 굳이 약속을 잡지 않아도 연말/연초에는 의례 만나는 사이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최근 들어 제가 친척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정말 미안하게도 그 친구와의 약속이 2순위가 되었습니다. 어제도 가족들과 헤어지고 너무 피곤해서 그냥 집에 가려다가 그건 아닌 거 같아서 연락을 해서 그 친구와 만나서 밥 먹고, 커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왔습니다. 주로 사업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생각해보니 이 친구를 만난 시점부터 다시 일상으로 복귀한 거였네요 ㅎㅎ 하지만 아직 연휴이고, 나와 일적으로 엮여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여유로움을 느끼며 즐겁게 이야기하고 왔습니다.
새해를 핑계 삼아 일부 지인들에게 커피 쿠폰도 몇 개 보내고,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사람들과 연락도 하고, 그러면서 은근 슬쩍 약속도 잡고... 역시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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