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젊음을 회사에 할애하고 그 대가로 월급을 받고 있다는 건 아마 대부분의 직장인이라면 알고 있을 겁니다. 제 경우에는 대학생 때부터 그러기 싫어서 취업 준비라는 걸 해본 적도 없고, 입사 지원서를 내본 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별 볼 일 없던 대학생이 뭔가를 하기에는 대한민국이라는 작은 땅덩이가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았습니다. 결국 작은 아버지께서 운영하시는 SI 개발 중소기업에 취업해서 6년을 다니다가 퇴사를 해서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퇴사한지는 4년쯤 된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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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한다고 고생도 좀 하고, 여전히 쉽지만은 않지만 다시 회사에 취업할 정도는 아니네요. 그런데 하나 재미있는 일이 있습니다. 바로 취업 생각이 없던 제가 작은 아버지 덕분에 발을 들이게 된 개발이라는 분야가 지금 현재 세계에서 제일 잘 나가는 업종이라는 겁니다. 제가 작은 아버지 회사에 입사해서 SI 일을 할 때만 해도 IT계의 3D라고 하면서 반도체, 선박, 자동차 업종 회사들이 많은 구직자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는데 어느 순간 모든 게 바뀌었네요. 그리고 다행히 저도 그 변하기 이전, 변하는 중간을 개발자로 일하면서 어설프게나마 겪었고, 그 경력과 경험들이 퇴사한 이후에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IT 개발과 엮이지 않은 업종이 거의 없는 세상입니다. 어느 회사에 가서 무엇을 하든, 심지어 퇴사해서 사업을 한다고 해도 개발이라는 걸 하지 않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이제 얼마 가지 않으면 역전될 확률이 높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개발자 공급보다 회사에서의 수요가 훨씬 많습니다. 대기업들도 엄청난 연봉을 제시하면서 개발자들을 흡수하고 있고, 스타트업 회사들은 높아진 개발자 몸값과 눈높이로 인해 직원을 구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런데 저는 개발 경력이 6년이 넘고, 심지어 퇴사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퇴사한 4년 동안에도 꾸준히 개발 관련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이와 기술적인 제약으로 대기업은 힘들어도 스타트업 회사들에게는 저 정도의 개발자여도 어느 정도는 수요가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퇴사했을 때만 해도 어떠한 형태로도 남의 회사와는 엮일 생각이 없었습니다. 엮이는 순간 많은 시간을 내 일이 아닌 남의 회사에 할애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IT 개발자 수요가 너무 많고, 코로나/오미크론이라는 변수 때문에 생각하지도 못했던 기회가 주변에 우글 거리고 있더라고요. 재택근무는 기본이고, 출근을 해도 일주일 1~2회 정도인 스타트업 회사들이 끊임없이 개발자를 구하고 있더라고요. 대기업이나 제가 일 했던 SI 개발 회사에 비해 일의 강도나 난이도도 훨씬 낮습니다. 그러면서 스타트업에서 원하는 기술/환경에서 작업하면서 최신의 기술도 공부하고 실습까지 해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월급이라는 고정적인 수익도 발생하는데 그 수익 정도가 제가 SI 개발 회사에서 월화수목금금금을 일하며 보낼 때보다도 훨씬 높습니다.
4년 전에 퇴사를 했던 이유는 어차피 소비할 시간과 능력이라면 나한테만 할애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연히 내 사업을 계속 하려고 한다면 남의 회사 밑으로 들어가면 안 됩니다. 그런데 위와 같은 조건으로 일하게 되면 제가 하는 사업에 어떠한 부정적인 영향이 생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술/인맥/수익 측면에서 내 사업에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겁니다.
최소한의 시간만을 할애해서 내 사업에 영향이 가지 않는 선에서 다른 스타트업 회사에서 계약직으로 일을 한 건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처음에는 사용하고 있는 사무실 바로 옆에 있는 스타트업 회사인데 일주일에 12시간만 일을 하면 된다고 하길래 퇴사한 지 3년 만에 다시 출퇴근을 하며 월급을 받았었습니다. 어떻게 하다 보니 6개월 정도 일을 하게 됐는데 느슨하게 다른 회사와 엮여서 직원으로 일하는 게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안정감, 소속감, 인맥, 기술, 수익 등 여러 면에서 장점이 많았고, 계속 말했던 것처럼 내 사업에 지장이 있지 않는 걸 넘어서 오히려 많은 도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관련 글 : 퇴사 4년 만에 다시 출퇴근하게 된 이유는]
그래서 첫 스타트업 회사 계약이 끝난 이후에 비슷한 형태로 일을 할 수 있는 곳을 알아보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전 스타트업 회사를 통해 또 다른 회사를 소개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출퇴근 거리가 상당했지만 주 2회 출근과 일주일 25~30시간 근무로 못 박고 계약을 한 지 3주가 지났습니다. 역시나 마음에 듭니다. 퇴사하고 사업을 하다가 일이 잘 풀렸을 때 느끼는 기쁨과 뿌듯함과는 또 다른 만족감이 있더라고요. 이때의 만족감은 직장인들이 회사에서 느끼는 장점들에 해당이 되겠죠. 하지만 차이점은 그 직장인들이 회사에서 느끼는 단점들 중 상당 수가 저에게는 해당이 안 된다는 겁니다.
사업을 하면서 어딘가에 묶여 있지 않으면서 고정적인 수익과 안정감, 소속감을 느낄 수 있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저에게는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퇴사 후에 벌써 세 곳의 회사와 계약을 맺고 직원으로서 일을 했던 겁니다. 취업 생각이 없던 늙은 대학생이 작은 아버지 덕분에 뒤늦게 개발자가 되었는데 타의에 의한 선택 덕분에 지금 제가 대학생 때부터 원해 왔던 형태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럴 수 있던 시기가 코로나/오미크론 때문에 좀 더 빨리 앞당겨진 면도 있습니다. 이것도 행운이라면 행운이죠...
그리고 이제는 종종 제 주변 신입 개발자들에게 나쁘지 않은 워라벨을 누리며, 월급을 받고, 그러면서 개발 경력과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스타트업 회사들을 추천해 주기도 합니다. 당분간은 사업 유지에 큰 문제는 없을 거 같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 있는 시간이 그렇게 많이 남아 있는 것도 아닐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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