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 개발 회사에서 아직 대리도 달지 못 한 신입이었던 시절에 저보다 2~3년 정도 연차가 더 높았던 선임이 "난 나중에 입으로 개발할 거야"라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 말이 왜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개발자가 어떻게 입으로 일해?
일하기 싫은가?
저 사람한테는 그게 어울리긴 하네
이런 맥락에 생각을 했었을 거 같습니다. 확실한 건 "나도 나중에는 입으로 개발해야지...!!" 이런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퇴사를 한 4년 동안에 제가 했던 개발 관련 일은 대부분 입으로만 하는 것들이었습니다. 출판사의 개발 관련 사내 교육이 그렇고, 컨설팅, PM의 역할도 마찬가지입니다. 개발 관련 일을 전혀 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 일이 핵심이었던 적도 없습니다. 협의, 조율, 조언, 설득 등의 일을 했었다고만 말을 하면 누구도 이걸 개발 관련 일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것들로만 개발 일을 하고 있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1780825?e=24232375
웹, 앱 등 다양한 형태로 온라인 서비스를 출시함에 있어서 개발 작업은 절대적으로 중요한 업무입니다. 하지만 프로젝트의 규모가 크거나 이햬 관계가 많을 때, 리더가 개발 관련된 지식이 전혀 없을 때 등의 상황에서는 개발 작업만큼이나 커뮤니케이션도 매우 중요합니다. 작업을 지시하는 사람, 직접 개발을 하는 사람, 선임 개발자에게 일을 받아서 작업하는 후임 개발자, 외주 업체, 함께 일 하는 타사 사람들 등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더라도 각자가 생각하는 그 일의 결과까지 모두 같을 수는 없습니다. 결국 함께 작업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같은 결과를 향해 갈 수 있도록 해야 되는 겁니다.
비 개발자 출신의 대표님들이 운영하는 스타트업과 함께 일 할 기회가 종종 있습니다. 개인적인 친분은 아니고 일로써 만납니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공통적으로 개발 관련 이슈와 인력의 관리를 어려워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해 보지 않았던 분야의 일인데 스타트업의 대표라고 그 일을 모두 할 수 있을 리가 없죠. 더욱이 지금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모두 IT 개발이라는 작업을 하지 않고는 시작도 할 수가 없습니다. 결국 비 개발자 출신의 대표님들에게 개발을 제대로 하냐/못하냐는 사업을 계속할 수 있냐/없냐의 첫 번째 관문입니다. 대표님들이 생각했던 서비스들이 제대로 개발되지 않아서 사업을 접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개발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이유는 많지만 회사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는 대표님들의 개발 작업에 대한 이해도 부족과 그로 인해 개발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못한 게 가장 큰 이유입니다.
전에 계약직 PM으로 일 하면서 함께 일했던 지인을 통해 위에서 설명한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에 있는 스타트업을 소개 받아서 대표님들과 대화를 하고 왔습니다. 재택근무이고, 평소에 관심이 있던 기술을 사용한다고 하길래 얼른 수락하고 면접을 보러 간 겁니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대표님들과 대화를 하고 나니 입으로 개발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 말을 저한테 했던 그 선임도 지금 제가 하는 생각과 동일한 관점에서 그런 말을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오늘 입으로 개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거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개발자 관점이다 보니 스타트업 대표님의 입장에서 당연히 개발 자체에 더 많은 일을 맡기고 싶어할 거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대화를 해보니 개발만큼이나 일정/설계/협의/조율 등의 비 개발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일을 맡기고 싶어 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개발 일을 하지 않고, 관리만 하는 인력도 필요하다는 겁니다. 당연히 필요할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아예 개발 작업을 배제할 정도일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한 겁니다.
개발 관련 이슈가 발생했을 때 대응해주고, 대표님들이 생각하는 거에 대해서 개발 관점으로 제안이나 대안, 피드백을 해주는 거, 개발 인력을 관리하는 거 자체가 비 개발자 출신의 대표님들에게는 엄청난 리스크였던 겁니다. 그런 분들을 처음 뵙는 것도 아닌데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런 케이스가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개발 비중을 줄이고 싶은 생각이 없던 건 아닌데 오히려 상대방 쪽의 반응이 이렇다 보니 아직도 제가 개발자라는 색안경을 끼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네요... 저는 아직도 멀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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